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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석 작품
진재해 작품
· 종 목 : 보물 1298호
· 명 칭 : 조영복영정(趙榮福影幀)v · 분 류 : 초상화
· 수 량 : 2폭
· 지정일 : 1999.12.15
· 소재지 : 경기 용인시 기흥읍 상갈리 85 경기도박물관
· 시 대 : 조선 영조
· 소유자 : 경기도박물관
· 관리자 : 경기도박물관
조선 숙종(肅宗) 때의 문신(文臣)인 조영복(趙榮福:1672 1728)의 초상화(肖像畵) 2점으로 하나는 흰색의 도포를 입고 있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공복(公服)을 입고 있는 모습이다. 조영복은 조선 숙종 31년(1705)에 과거에 합격하여 여러 벼슬을 지냈다. 도포를 입은 모습의 초상화(초상화)는 동생인 조영석(趙榮祏:1686 1761)이 그린 것으로 길이 125㎝, 폭 76㎝ 크기이며, 앉아 있는 전신상(全身像)이다.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인데, 조선 초상화에서는 드물게 양손이 나와 있는 것이 특징(特徵)이다. 이 영정(影幀)은 유학자(儒學者)의 기품(기픔)이 잘 드러난 사대부(士大夫)의 모습을 생생하고 실감나게 담아낸 매우 가치(價値)있는 그림이다.

다른 하나의 초상화는 공복을 입은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오른쪽을 향하고 있다. 길이 154㎝, 폭 79㎝의 크기의 이 그림은 당대(當代) 유명한 화가(畵家)인 진재해(秦再奚:1691-1769)가 그린 것인데, 세밀(細密)하고 정교(精巧)한 묘사(描寫)가 돋보이며 17세기 말(世紀末)에서 18세기 초 공신상(功臣像)의 모습을 잘 반영(反映)하고 있다. 도포를 입은 모습의 초상화는 경종(景宗) 4년(1724)에 그리고, 그 이듬해인 영조(英祖) 1년(1725)에 공복을 입은 모습의 초상화를 그렸다. 같은 시기에 동일한 인물(人物)을 그린 두 영정(영정)은 그림의 성격(性格)과 특성(特性)을 비교해볼 수 있는 좋은 자료(資料)이다.

전문설명

조영복(1672 1728)은 조선조 숙종 때의 문신으로 자는 석오(錫五), 호는 이지당(二知堂), 본관은 함안(咸安)이다. 김창협(金昌協)의 문인으로 숙종 31년(1705)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고, 승정원 좌승지(承政院左承旨), 개성부유수(開城府留守),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 등을 지냈다. 조영석이 그린 조영복 영정은 하얀 사방건(四方巾)에 무색 도포를 입고 양손을 노출(露出)시킨 채 앉아있는 조영복의 모습을 그렸다. 관아재(觀我齋) 조영석(趙榮祏:1686 1761)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사대부 문인화가로 조영복의 아우이다. 이 영정은 유풍(儒風)이 짙게 배어있는 사대부의 모습을 생생하고 실감(實感)있게 담아내었던 17세기에서 18세기 전반경으로 이어지는 사대부상(士大夫像)의 한 유형으로써 그 가치(價値)가 매우 높은 그림이다.

진재해가 그린 조영복 영정은 조영석이 화사 진재해(1691 1769)로 하여금 의자에 앉아있는 조영복의 모습을 그리게 한 것이다. 정밀하고 정교한 묘사가 돋보이며,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엽 조선후기 공신상(功臣像)의 양식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숙종어진(肅宗御眞)을 모사(模寫)한 화사(畵師)로써 이름을 떨치고 국공(國工)으로까지 지칭(指稱)되었던 진재해의 기량(技倆)을 파악(把握)해 볼 수 있는 유일(唯一)한 현존작(現存作)으로 매우 중요하다. 같은 시기에 같은 인물의 영정을 그렸던 조영석과 진재해의 그림은 신분(身分)과 용도(用途)의 차이(差異)에 따라 달리 나타난 그림의 성격과 특징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