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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호정(方壺亭)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리에 있는 정자로 경상북도 민속자료(民俗資料) 제51호(1984. 12. 29.)로 지정되었다. 방호정(方壺亭)은 광해군 11년(1619년) 9월에 방호공(方壺公)이 지은 정자로, 낙동강 상류(洛東江上流) 길안천 절벽(絶壁) 위에 있다. 방호공(方壺公)이 44세 때 돌아가신 어머니를 사모(思慕)하는 마음이 간절(懇切)하여 생모(生母) 안동권씨(安東權氏)의 묘(墓)가 보이는 이곳에 정자를 세웠다고 한다. 처음에는 정자의 이름도 어머니를 생각한다는 뜻에서 "사친(思親)" 또는 "풍수당(風水堂)"이 라고 하였다. 건물은 기역자형(ㄱ) 의 평면 구조(平面構造)이며, 측면은 팔작이고 전면은 맞배지붕이다. 이준(李埈), 조형도(趙亨道), 권익(權翊), 신집(申輯) 등의 학자들이 모여 학문을 강론(講論)하고 산수(山水)를 즐겼다. 정자 안에는 방호문집(方壺文集)의 판각(板刻)이 보관되어 있으며, 많은 학자들의 제영현판(題詠懸板)이 걸려 있다.
조길방가옥(趙吉芳家屋)

1984년 12월 24일 중요민속자료 제200호로 지정되었다. 약 290년 전에 지은 목조가옥(木造家屋)으로, 안채 사랑채 아래채로 구성(構成)되며, 사랑채와 아래채는 후에 고쳐 지은 것이다. 안채는 잡석으로 쌓은 축대(築臺) 위에 서쪽을 향해 자리잡았고, 왼쪽으로 축대를 연장(延長)시켜 부엌 옆에 장독대를 두었다. 축대 앞 낮은 앞마당에는 좌우로 아래채와 사랑채가 마주보고 배치되었다. 안채는 남부형에 속하는 평면구성으로 설계(設計)되어 마루 왼쪽에 큰방과 부엌을, 오른쪽에 건넌 방을 배치(配置)하였다. 마루는 2칸이며, 큰방과 건넌방으로 드나들 수 있도록 외여닫이 궁판 세살문을 만들었다. 특히 큰방 앞면으로 난 외여닫이 살창문은 크기가 매우 작아 출입보다는 채광(採光)과 통풍(通風)을 염두(念頭)에 둔 것으로 추측(推測)된다. 자연석(自然石) 주춧돌 위에 네모기둥을 세우고 방 주위에는 흙벽을 쳤는데, 마루의 앞면 중앙 기둥만 둥근 기둥을 세웠다. 3량(三樑)집의 간소(簡素)한 구조이며, 싸리기둥에 칠기봇장(칠기나무로 된 보)을 얹은 것이 특징이다. 초가(草家)로는 보기 드문 오래된 건물로, 안채의 창문(窓門) 규모(規模)와 성격(性格)은 주택발달사(住宅發達史)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소유자는 조칠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