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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재기(정재기)

함안 조씨가 그 들의 선조 시정공을 위하여 묘소아래 하림재를 세운 것은 오래 된 일이다. 근년에 다시 중건하면서 양식은 예대로 하였으나 규모를 많이 늘려 헌활하고 아름다워 거족인 그들이 선대의 제사를 모시는데 불비 된 점이 없었다. 재실이 완성되자 종의(宗議)에 의하여 나를 찾아 온 분이 나에게 기문 짓기를 책임을 지우니 이를 어찌하랴? 서리가 내리면 시사를 모시게 되고 추모의 심사가 처량하게 느껴지는 것은 외부적 요인에서 울어나는 것이 아니요 재실에 올라 두루 살펴보면 엄숙한 법도가 남의 도움 없어도 절로 생겨나나니 하물며 나처럼 비천하고 졸렬한 자의 말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무엇이 있겠는가? 그러나 이렇게 부탁하니 한 말을 않을 수 없다.


공의 아버지인 전서공이 고려와 조선의 역성혁명에 즈음하여 절의를 지켜 두문동의 여러 현사와 이름이 남겨져 있다.    


공은 초년에 벼슬길에 올라 세상에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을 분이었으나 마침내 뜻을 펴지 못한 것은 나이의 탓이 아니요 영화에 마음을 두지 말라는 가훈을 이어받았을 까닭이었다. 아들인 어계선생의 대에 이르러 청아한 풍의와 높은 절의로 생육신의 한분으로서 서산의 백이숙제와 같다고 칭송 받았으나 만약 당시의 현실에 상응했더라면 부귀영화를 함께 누릴 수 있었을 것임에도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이렇게 하여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자손들을 계도하게 되어 명성과 덕망의 높은 빛이 수풀처럼 울창하게 뻗어 나라와 지방의 기초가 되었으니 그 근원이 깊지 않고  쌓은바 두텁지 않고서는 그 흐름이 넓게 뻗칠 수 없는 자연적 이치가 아닐까? 나 일찍이 소동파(蘇軾)가 지은 왕씨 삼괴당의 기문을 읽으니 하늘의 기필함과 그렇지 않음의 발단은 후히 베풀고서도 그 보답을 받지 않음으로써 그이 자손들이 능히 천하의 복록을 향유(享有) 할 수 있게 귀결 된다고 하였다. 대개 하늘의 법칙은 당시 향유하지 못한 분을 그 뒤로 물려준다는 사실을 증명하니 그 복록이 다하였다면 장차 후대에 무엇을 취할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로써 관찰해보면 조씨의 흥성함이 진실로 공의 상하 삼대 은덕의 축적에서 연유 된 것이나  지금까지 그러한 설명이 없었다. 조씨 제공이 지금 이 사실을 알고 과연 어떻게 할지 알 수는 없으나 간절한 심정으로 이와 같이 부 기하여 한 말씀하겠다는 책임에 가름하며 세상에 명확한 이치를 알림과 동시에 혹 어떤 사람이 이 모든 사항들이 오직 산수 지리 설의 확실한 증거라고 한다면 나의 전문적인 학문이 아니기에 이는 취할 수 없다하겠다.


병오년(1966.) 윤삼월 말에 문소 김 황(金榥)은 기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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