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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미정기(정재기)

함안군청의 서쪽 삼십리 지점에 무게 있는 산이 마치 품격 높은 군자와 은사가 전야 속에서 천지가 다하여도 그 뜻을 변치 않을 듯 서 있으니 바로 백이산 이다. 산의 서쪽은 선조 어계선생께서 사셨던 고장이다. 숙종 계미년에 영남의 사림이 사당을 그곳에 건립하여 선생과 경은 이선생 관란 원선셍 동봉 김선생 문두 성선생 추강 남선생 등의 향례를 모시고 있다.


사당의 동쪽에 백이산이 바로 마주하고 있어 육선생의 절의가 백이와 충분히 견줄 수 있기에 서원 명을 서산이라 부르게 되었을 것이다. 또한 동쪽의 강당 밖에 연못과 암석의 경관이 뛰어나 모두가 의논하여 정자를 세워 채미정이라 호명 한 것은 선생께서 일찍이 읊은 구일 등고시를  백이의 서산 채미가에 바유 하여 선생을 사모하는 정에서  그 이름을 인용한 것으로 생각 된다.


육 선생께서는 단종이 선위(禪位) 한 후 모두가 선왕의 영(靈)에 성의를 바치며  자취를 감춰 은거하면서 천지와 인생의 법칙을 밝혔으며 교화(敎化)를 천 백대에 부식(扶植)하였으니 진실로 백이에게 조금도 부끄러움은 없을 것이다. 또한 어계선생은 처음부터 단종조에서는 벼슬을 하지 않으셨으며  김시습 처럼 선왕조의 대우도 받지 아니하셨다. 만약 선생의 문장과 깊이 통달한 학문의 실력을 당시에 발휘했더라면 성취 못 할 바 없었음에도 산수간에 의지하며 낚시에 몸을 맡겨 늙어 인생을 마쳐도  아무런 후회 감은 없으셨으니 돈독히 믿는 도의심과 스스로 깨닫는 밝음이 없었다면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었으리요?


함안은 진정한 선생의 고향이다. 후손이 모여 거주하며 선생과 선대의 묘소가 서로 마주하여 바라보이는 곳이요 서원과 정자사이는 모두가 선생께서 지팡이를 끌고 조석으로 소요하시던 곳이다. 대저 백이산이 타향에 있지 않고 함안에 있으며 또 다른 곳이 아닌 선생의 마을에 있다. 산의 이름을 백이라고 한 것은 선생의 출생과 연관을 지었던 것 같으며 선생의 내면적인 금심과 사려(思慮)는 감개 침울하여 중양절에 산에 올라 국화꽃송이 꺾어 하늘을 우러러 옛일을 회상하고 소요하며 읊은 시에 태평성대를 볼 수 없는 것을 한탄하여 표현하신 그 뜻은 자연히 발견할 수 있으니 또한 백이와 숙제의 채미가와 심사는 같으셨다. 여기 서원에 왕래하는 많은 선비들이 다 같이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하여 또 다시 이 정자를 건립하여 치성을 지극히 하는 것은 남기신 발자취를 게양(揭揚)표명(表明) 하여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우러러 추상케 하며 오래도록 더욱 더 새롭게 하려함이다.


기묘년에 나 영석(祏榮)은 의령현감으로 재직 중 여기에 와 선대의 사당에 절을 올리고 채미정에 올라 등고시를 읊고 백이산을 바라보며 선생의 유풍을 가슴속에 새겼으며 여러 종족들과 함께 정자아래 회동하여 돈독히 정의를 나누고 친근히 술을 마시며 시를 엮으며 즐겁게 지냈었다. 그 후 종족들께서 정자의 기문을 짓기를 명하니 혼자 생각하기를 만약 이 글이 문설주위에 게양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선생의 후손의 작품인 것을 알게 된다면  이 얼마나 영광이며 다행한 일이 아니겠느냐? 사양하지 않고 이 기문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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