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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산서당기(정재기)

우리 어계선생은 일개 진사의 신분으로 단종을 위하여 시신을 수렴하시고 삼년을 복상하였으니 족히 백세의 기풍이요 또한 가슴속 깊고 은미한 사상은 털끝만큼도 처지를 원망하는 기색 없이 스스로 그 명수(命數)를 편안히 하여 종명(終命)토록 임금을 잃은 절의를 지키셨으니  오호라! 선생은 백이(伯夷)와 기자(箕子)의 곧음을 얻으셨다 하겠다.


함안 읍의 서쪽 이십 리 지점에 쌍봉(雙峰)이 있어 군지(郡誌)는 쌍안(雙岸)산이라고 기록 하고 있다. 선생이 나면서 북쪽을 백이봉 남쪽을 숙제봉이라 부르게 되었으니 그들과 산은 삼천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천하 또한 광대한데 다시 서산이 여기에 있다. 선생은 이 산 아래에서 성장하여 요순시절의 심지로 살았으나 마침내 시대의 흐름이 자신의 의지와 맞지를 않아 이 산과 더불어 홀로 독립하여 은둔생활 하는 것을 두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목석처럼 고민하지 않으셨으니 천지와 함께 여기에 참여한 자는 선생과 이 산 뿐이다. 


동쪽 산록에 옛날에 서원이 있었다. 숙종 계미년에 건립하여 십년 후의 계사년에 나라에서 서산이라는 원호를 받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임인년에 모두가 의론하기를 훼철 된 서원의 옛터를 그대로 묵혀 둘 수는 없지 않느냐하여 이 서당을 건립하니 동남쪽에 위치하며 많은 선비를 수용하여 강의를 개최 할만 하였다.


오호라! 선생의 곧은 도의(道義)가 구천을 관통하고 청풍이 온 누리를 깨끗하게 하여 세상의 충신과 의사와 참다운 유림과 올바른 사람들이 계승(繼承)하여  일어나 천륜을 빛내고 인륜의 기강을 진작시켜 천하가 평화를 법칙으로 삼는다면 이 후에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함께 요순의 세상에 참여하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게 될 것이니 이것이 어찌 우리 집안만의 소원이겠느냐?  또한 천하의 행복이 될 것이니라.!


임자년(1912)  구월 상순에 후손 정규(貞奎)는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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