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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보서문

족보의 의의(意義)는 송(宋)나라 소순1)(蘇洵)이 쓴 서문에서 다 말하고 있다. 무슨 군말을 더 할까 보냐. 다소곳 생각건대 우리의 종성 (宗姓)조씨는 고려조로부터 명성이 들 났으며 또 조선조에 이르러서도 크게 번영하여 관작과 훈공(勳功)이 많아 집안의 융성함이 당나라 왕(王)·사(謝)씨나 송나라 최(崔)·노(盧)씨의 거족(巨族)에는 못 미친다 하더라도 영남의 저성(著姓)으로서는 그 면목을 잃지 않고 있다.


이에 근세에 나타나는 인물을 들면 금화(琴畵)에 전서공 열(悅) 청은(淸隱)에 어계공 려(旅) 문장(文章)에 저작공 욱(昱) 명관(名官)에 참판공 동호(銅虎) 검소(儉素)에 좌윤공 금호(金虎) 인물(人物)에 대헌공 순(舜) 청근(淸謹)에 집의공 삼(參) 시조(詩調)에 판결공 적(績) 필법(筆法)에 내헌공 연(淵) 성효(誠孝)에 전중공 응경(應卿) 풍역2)(風力)에 종부공 감(堪) 사절(死節)에 대소헌공 종도(宗道)가 있어서 문호를 빛내며 나라에 명성 높아 우리 선대를 빛내고 후대를 계발(啓發)하였으니 아! 거룩하고 아름답구나. 그러나 천부의 뛰어 난 자질을 가추고 서도 산야에 묻혀 살면서 도학에 정진하신 분이 왕왕 그 속에  났음으로 사람들이 일컫기를 타족(他族)과 다른 점이 있다 하였으니 이 어찌 우연한 일이라 하랴?


일찍 족조(族祖) 감찰 응경(應卿)공이 편찬한 구보를 살펴보면 많은 힘을 써 선대의 묘와 비문 까지를  찾아냈으나 판도판서 천계(天啓)공 이상은 분묘 소재지도 잘 알 수 없으며 정당 열(烈)공 이전은 부인성씨 조차 모르고 있으니 이 어찌 후손들의 일대 통한이 아니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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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순 [ 蘇洵 , 1009~1066 ]자 명윤(明允). 호 노천(老泉). 메이산[眉山:지금의 四川省] 출신. 젊은 시절에는 협객(俠客) 노릇을 하다가 27세 때에 분발하여 학문에 정력을 쏟았으나 진사(進士) 시험에 낙방하자 관리가 되기를 단념하고 정치와 역사평론의 저술에 힘썼다.
1056년 날카로운 논법(論法)과 정열적인 필치에 의한 평론이 구양 수(歐陽修)의 인정을 받게 되어 일약 유명하여졌다. 그후 조정에 나가 북송 이래의 예(禮)에 관한 글을 모은 《태상인혁례(太常因革禮)》(100권)를 편찬하였다. 정치 역사 경제등에 관한 평론도 많이 썼으며, 아들 소식(蘇軾) ·소철(蘇轍)과 함께 삼소(三蘇)라 불렸고, 함께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로 칭송되었다. 또, 소순을 노소(老蘇), 소식을 대소(大蘇), 소철을 소소(小蘇)라고도 부른다. 그의 문집을 《가우집(嘉祐集)》 또는 《노천선생집(老泉先生集)》이라 하며, 그 밖에도 《시법(諡法)》(4권)의 저작이 있다.
2) 풍력(風力) ;  사람을 감화시키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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