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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보서문

전라와 충청 양도에 관향(貫鄕)을 함안으로 한 조씨가 아주 많다.함양에 사는 사인(士人)조세순(趙世純)과 조유인(趙由仁)등이 동성이라 하면서 내께 말하기를 고려조 때에 형부상서(刑部尙書)를 지낸 영준(英俊)공이 처음으로 함안에서 함양(咸陽)으로 옮겨 자손들이 세거하고 있다고 말하나 상서(尙書)공 이하는 본보에 수록되어 있지 않고 제주에도 함안 조장군호구(趙將軍戶口)라 일컫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나 함안에 있는 조씨는 아직 모르고 있으니 이 어찌 함조에 적을 둔 자는 많으나 함조의 족보에 실린 자는 적은 것일까?


생각건대 고려 때는 인사가 질박(質朴) 우둔(愚鈍)하고  문물제도도 미비하여 묘소를 숭상 할 줄 모르고 족보조차 편집치 않아서 세월이 오래됨에 그냥 잃어버린 채 오늘에 이른 것일까?


이로써 말할 진대 묘지(墓誌)짓는 것과 족보의 간행은 모두 빠뜨려서는 아니 될 중요한 일임은 자명하다. 이제 구보를 모방하여 새로운 일을 삽입도하고 간간히 나의 소견도 첨가하여 어느 집 누구와 혼인했으며, 어느 산 어느 곳에 무덤이 있다는 것을 반드시 기록했음은, 기왕의 잘못을 후회하고 장래의 경계심을 깨닫게 하여 오늘의 어리석었음을 조금이나마 모면코자 함이다.
대저 이 족보가 있음으로 써 천백 년 후에도 천백 년 전의 일을 밝힐 수 있을 것이요 반대로 이 족보가 없다면 몇 대 후에 태어 난 사람이 몇 대 전의 사실들을 알 수 없을 것이니 선세대의 흔적을 나타냄의 여부나 업적을 알고 모름은 족보의 간행 여부에  달렸다 하겠으니 이번의 족보가 얼마나 비중이 큰 가를 가히 짐작 할 수 있겠다. 이점이 곧 나의 정성껏 힘 들여 보첩을 다시 편찬 하고자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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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형부상서[刑部 尙書]: 육부의 하나로, 법률·소송·형옥(刑獄)에 관한 일을 관장한 관청의 정3품직
4) 묘지[墓誌]죽은 사람의 이름 신분 행적 등을 새겨서 무덤 앞에 파묻는 돌이나 도판(陶板).또는 거기에 새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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