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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보발문

族譜之義蘇氏之序盡之又何敢贅爲之說也恭惟我宗姓趙氏肇顯麗朝繼有名位入


족조(族祖) 간송당(澗松堂)께서 지난 정사 년에 이미 족보의 서문(序文)을 쓰셨다. 그토록 족보발간에 뜻을 두신지 오래이나 지금까지 족보가 발간되지 못한 사유는 무엇이었을까?


나(逢源(봉원))는 항상 이점을 안타 갑 게 생각하고 있던 중 지난 해 봄에 고령(高靈)현감으로 부임하고 보니 고령과 함안은 가까운 지역 이라 종성(宗姓) 족당(族黨)을 자주 만날 수 있었으며 간송당 선생과도 서로가 가까운 거리임으로 참으로 다행이라 여겨 왔으며 혼자 말하기를 “만약 이런 기회에 조씨 족보를 이루게 된다면 내가 고령에 온 보람이 있지 않겠는가? 했더니 마침 인동에 있는 사인(士人) 조휘(趙椲)가 그 가장보첩(家藏譜諜)을 휴대하고 내방(來訪)하였는데, 즉 형부상서(英俊(영준))의 후손이었다. 간송당(澗松堂)선생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점을 찾아 낸 기쁨이 있었다. 이에 함안을 비롯하여 서울 등지에 있는 종족에게 통문을 보내 각각 분파와 자손의 초단(草單)을 보내도록 하고, 공무의 여가를 이용하여 아들 근(根)과 같이 반복(反復)참고(參考)하여 구보에 근거를 두어 첨가(添加)기재(記載)하고 한편 널리 탐문(探問)하여 정성을 다해 수개 월 만에 수록(收錄)을 다하였다.


곧 근(根)을 간송당(澗松堂)선생에게 보내 자세한 교정을 받고자 하였더니, 출발에 앞서 선생의 부음이 도착하니 아! 슬프고 슬프도다.


수가 많은 상서(尙書)공 영준(英俊)자손들을  모두 수집하여  족보에 수록했으나 전주에 거주하는 전서(典書)공 거(琚)후손들은 미처 싣지 못하였으며 영돈정(領敦正)이상 오대는 명(名)·호(號) 조차 모르고 있다. 사온영(司醞令) 조숙분(趙菽芬) 사재령(司宰令) 조득중(趙得中) 민부상서(民部尙書) 조안경(趙安卿)등의 자손도 호남(湖南) 또는 해서(海西)지방에 있으면서, 모두 함안 조씨로 적을 두고 있으나 시조이하 대수가 소상하지 않으므로 잠정적으로 별보에 넣었으니, 이것이 약간의 흠이라 하겠다. 또 듣건대 조성(趙姓)인이 풍천(豊川)·공주(公州)에 많이 살면서 모두가 함안을 본관으로 삼고 있다 하므로 서신을 보내어 그 조상을 물어보려 하였으나 나(逢源)는 때 마침 여기에만 관심을 집중 할 수 없는 일이 생겨  다만 목전의 발간사업에 몰두하여 일일이 다 수록치 못하였으니, 개탄(慨歎)을 금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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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해서[海西]:황해도의 별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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