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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보서문

생각건대 우리 함안 조씨의 옛날 족보는 실은 족조(族祖) 이신 간송당(澗松堂)선생께서 편수한 것이고, 나의 조부 파서부군(坡西府君)이 고령(高靈)현감으로 재직 중 간행 한 것이다.


그런 후 칠십 여년이 지났으나 후손이 다 등재 되어있지 않고
파(派)의 계통(系統)도 알아내기 어렵게 되었다. 백씨 참판공(榮福)이 경상도의 관찰사(觀察使)로 계실 때부터 개수(改修) 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었다. 그러다 그가 세상을 떠나신 후 족질 중직(重稷) 중명(重明)과 조카인 중회(重晦)등이 의론하기를 수보(修譜)를 꼭 빨리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하여 경향 각처에 통고문을 발송하여 여러 집안의 파별로 명단을 수집하여 편집을 하면서 거듭  반복 교정하여 여덟 편으로 엮었다. 그 규모는 대체적으로 구보의 예를 준수 하면서 약간의 수정을 가 하였다. 또 미리 종중에 두루 통지하여 각자의 재정적 부담을 안게 하여 인각(印刻)을 시작한지 칠년 만에야 보책의 완성을 보게 되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라 하지 않으랴?


나 영석(榮祏)이 다소곳이 생각해보면 족보가 진실로 소중 하다는 것은  다만 세계를 표기하고 자녀를 수록하여  그 촌수의 원근과 소목(昭穆)의 차례를 알게 할뿐 아니라 후세로 하여금 선대의 은덕을 고찰하며 유풍을 추모하여 자신을 다스리고 그 가통을 유지함에 있는 것이다.


우리 조씨가 함안을 본관으로 삼은지가 거의 칠 팔 백 년의 세월이 흘렀다. 종족이 전국 사방에 산재하나 영남에 거주하는 자가 가장 많다. 함안 진주 청송등지에 조씨의 분묘가  서로가 마주보듯 많아 왕왕 수리에 걸쳐 뻗어 있으니 이로써 조씨가 영남의 대성임을 가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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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소목(昭穆) 조상의 신주를 사당에 모시는 차례. 한가운데에 시조의 신주를 모시고 그 오른쪽을 목(穆), 왼쪽을 소(昭)라 하여 3·5·7세(世)를 목에, 2·4·6세를 소에 모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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